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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제17대 임금, 북벌을 꿈꾼 효종

by 리액션스타 2023. 11. 28.

1. 효종은 누구인가?

효종은 1619년 조선의 제 16대 임금 인조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효종의 형으로 소현세자가 있었는데 1636년 병자호란 이후 형과 함께 청나라의 볼모로 잡혀가 8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효종은 무예를 좋아하여 기골이 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청나라에 있을 때도 형을 대신하여 전쟁에 참여하고 형의 보디가드로써의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형인 소현세자가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가 왕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나 8년간 타국에서 동거동락한 형이 귀국한지 2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자 소현세자의 아들 대신 인조의 힘에 의해 1649년 왕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1659년까지 10여년 동안 재위하게 되지요.

무예를 갈고 닦아 누구보다 건강했던 효종은 이마에 난 작은 종기 하나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당시 집권하고 있던 사람들이 효종의 북벌을 못 마땅하여 암살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는 부분이 있다고도 합니다.

2. 효종의 업적

(1) 북벌운동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의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효종)은 청나라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달랐습니다.소현세자가 직접 본 청나라는 생각보다 강한 국가였고, 조선 보다 문물이 훨씬 발전한 나라였습니다. 소현세자는 억울하고 화가 나지만 조선도 발전하기 위해서는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많이 배워야 겠다고 생각했고 청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반면 봉림대군은 여전히 아버지 인조에게 씻을 수 없는 굴욕을 준 청나라를 용서살 수 없었고 그들과 거리를 두는 인질 생활을 했습니다.

청나라 인질 생활을 끝내고 8년만에 귀국해서도 봉림대군은 그날의 치욕을 잊지 않았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조선의 17대 임금 효종이 되어버린 그는 아버지 인조의 원수를 갚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왕이  된 효종은 즉위하자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받아 서인들과 함게 북벌운동을 계획합니다. 그리고 뜻을 함께 하기 위해 성리학의 거장 송시열과 송준길을 인재로 채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북벌 운동은 효종의 계획처럼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백성들도 신하들도 전쟁에 짗ㅆ기 때문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을 시작으로 1627년에는 정묘 호란을 1636년에는 병자호란을 겪었던 터라 전쟁에는 신물이 났고 백성들의 삶은 이미 피폐해 졌기 때문입니다. 송시열과 서인들도 효종에 북벌운동에 장단은 맞춰줬지만 나라 살림과 민생에 더 집중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북벌운동은 계획에 그치고 실행은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북벌운동을 위해 군사력을 한창 키우고 있을 때 청나라에서 러시아와의 전쟁이 발발했는데 청나라에서 군사 요청이 들어와 군사를 파견하는 바람에 오히려 청나라의 나선정벌을 돕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2) 서양의 이방인 하멜

조선 후기에는 아시아 지역이 서양과의 교역이 활발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인조시대 최초의 서양인 네덜란드 사람인 벨테브레에 이어 효종 시대에는 하멜 표류기로 유명한 하멜이 조선에서 약 14년 동안 억류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조선은 표류하다가 조선에 온 이방인들을 자신의 나라로 돌려 보내지 않고 노역 생활을 시키며 조선에 머물게 했습니다. 그들의 기술과 문명들을 알고 싶었나봐요. 그렇게 노역생활을 하던 하멜은 운좋게 일본으로 도망을 가고 고향인 네덜란드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멜표류기를 발행하는데 이 책이 한국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책 입니다

 

(3) 예송논쟁

기골이 장대하고 강했다는 효종은 이마에 난 작은 종기 하나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효종의 죽음은 그것으로서 끝이 아니었습닏. 효종이 죽고난 후 상복을 입는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 간의 논쟁이 시작 되었습니다. 상복 입는 기간이 무엇이 중요하나 싶지만 유교를 중시하는 당시의 조선에서는 상복을 입는 기간을 예학에서 매우 중요시 했습니다. 예송논쟁에 대해서는 현종 시대에서 다시 자세히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3. 평가

의도지 않게 왕이 되어 버렸지만 아버지의 굴욕을 복수하기 위해 노력했던 효종, 또 청나라 볼모로 잡혀 있던 시절 형의 경호원 역할을 자처했던 효종은 분명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두 강한 임금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오랜 기간 전쟁에 힘들어 하고 있는 백성들의 생활을 보지 못하고 다시 또 전쟁을 준비하려 했던 것은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소현세자가 죽지 않고 왕이 되었다면 조선은 좀 더 빨리 개혁, 개방을 시작할 수 있었고, 백성들의 삶이 조금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