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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18대 임금, 논쟁의 중심에 선 현종

by 리액션스타 2023. 11. 29.

1. 현종은 누구인가?

현종은 조선의 17대 임금 효종의 장남입니다. 특히, 봉림대군 (효종)이 청나라에 볼모로 갔을 때 태어났기 때문에 조선 임금 중 유일하게 외국에서 태어난 임금입니다. 아버지 효종은 소현세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왕이 되었기 때문에 세자로서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으나, 현종의 경우에는 봉림대군이 세자로 책정 되면서 세손이 되고, 세자를 거친 후 왕이 된 나름의 엘리트 코스를 밟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1659년 왕이 되고 1674년 승하 할때까지 약 15년간 재위를 하게 됩니다. 부인으로는 어디선가도 많이 들어본 명성왕후 김씨 입니다. 조선의 왕중 유일하게 후궁이 없는 순정파 라고도 알려져 있으나 명성왕후가 무서워서 감히 다른 후궁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2. 현종시대의 사건

현종은 15년이라는 나름 긴 시간 동안 재위 했음에도 기억에 남는 업적은 많이 없습니다. 다만 조선을 상징하는 논쟁인 2차례의 예송논쟁이 가장 유명합니다. 예송논쟁은 기본적으로 효종과 효종의 아내인 인선왕후가 죽었을 때 상복을 입는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이 치열하게 싸운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오랜 기간의 전쟁 등으로 민생이 도탄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민생을 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무슨 상복 입는 기간 가지고 싸우냐고 할 수도 있지만 조선이 어떤 시대였습니까? 실리 보다는 명분, 민생 보다는 유교적 이념을 더 중요시 하는 유교 국가 아니겠습니까? 상복은 단순히 사람이 죽었을 때 입는 옷 이라기 보다는 유교의 정신을 담은 하나의 예이고 신분간의 위계를 나누는 하나의 척도 였던 것입니다.

 

(1) 1차 예송논쟁(기해예송)

1차 예송논쟁은 현종의 아버지 효종이 승하하고 난뒤 효종의 계비인 자의대비 (계비 이지만 효종 보다 5살 어렸습니다)가 상복을 얼마 동안 입어야 하는지를 두고 남인과 서인이 서로 싸운 것입니다. 이 때가 기해년이라 기해예송이라고 합니다. 당시 사대부들은 장남 이하의 아들이 죽었을 때는 상복을 1년간 입었고, 왕인 경우는 사대부들과 달리 3년간 상복을 입었습니다. 서인들은 인조의 첫째 아들은 소현세자였던 만큼 효종은 둘째 아들이므로 상복을 1년간 입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반면 남인들은 효종이 비록 둘째 아들이기는 하지만 왕이기 때문에 일반 사대부들과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으니 3년간 상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현종은 당시의 집권 세력인 서인들의 편을 들어 줍니다. 아직 현종의 왕권이 확립되지 않았고, 왕이 원하는 정책을 펴기 위해서는 서인들과의 관계를 원만히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서인들의 편을 들어 준 것 같습니다. 

 

(2) 2차 예송논쟁 (갑인예송)

2차 예송논쟁은 현종의 어머니인 인선왕후가 승하하자 또 다시 자의대비 (1차 예송논쟁 때 상복을 입는 기간의 적용 대상)의 상복 입는 기간을 두고 또 싸운 겁니다. 서인은 또 당연히 둘째 아들의 부인이기 때문에 9개월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남인은 그래도 엄연한 왕이기 때문에 일반 사대부와 같이 적용할 수는 없고 1년의 기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마도 서인은 1차 예송 논쟁과 같이 또 현종이 자신들의 편을 들어 주리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현종은 서인의 편이 아닌 남인의 편을 들어 줍니다.  아마도 서인들의 권력, 특히 송시열의 힘이 너무 커져버렸기 때문에 이를 견제하기 위해 남인들에게 힘을 실어준 것으로 판단됩니다.

송시열

 

예송 논쟁은 단순히 상복을 입는 기간을 정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효종을 인조의 둘째 아들로 인정하는지, 아니면 온전히 조선의 왕으로 인정하는지에 따라 왕의 정통성과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민생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이런 논쟁이 당시의 조선을 상징하는 일이 된 것입니다.  

3. 평가

현종시대는 현종 자신 보다는 현종 시대에 있었던 인물, 그리고 현종의 아들 숙종, 손자 영조가 더 유명했던 시절인것 같습니다. 시대의 정치 이념이 과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 수있었던 그런 시대인 것 같고 재위기간에 비하여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뜻하지 않게 로맨티스트로 남았던 현종이었습니다